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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 니케포로스&아이스킬로스&토감 한 머리털 하얗고 몸은 노오란 꼬마 켄타우르스가 숲길을 내며 걷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키릴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다. 그는 이름이 노래로 지어지기에는 짧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도 아니었다. 평생이 길진 않으나 평생 키릴로 살았다. 이름 따위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름 가지고 마음에 드니 안 드니 트집을 잡는단 말인가. 농담이 아니라 할 일이 정말로 많았다. 가령 갑판을 청소하는 것. 하늘과 바다를 배우는 것. 허드렛일. 청소. 수업. 갑판을 청소, 이미 말했군. 이게 다 철없고 힘만 센 어머니 때문이다! 같이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어머니는 키릴이 노는 꼴을 가만히 보는 법이 없어서 낚시를 하거나 갑판 맨 아래에서 노를 .. 2021. 7. 26.
N-3 니케포로스&마카이라 “당신 말대로 우리는 무척이나 달라요.” 여기까지는 분명히 납득했다. 아니지, 여태까지 니케포로스가 계속 한 말이잖아!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마카이라는 그들 사이의 공통점으로 “첫째, 우리가 다름을 안다.”를 꼽았다. 하나 더 있었는데 “둘째, 그것을 안다.”였다. 불경하다고 손가락질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니케포로스는 이럴 때 꼭 아폴론을 찾았다. 제 어머니의 아버지시여, 빛을 나누어 주실 때 기왕이면 지혜도 조금 나누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당신이 지닌 지혜에서요, 제가 뭐 많은 거 바라지 않아요, 밀알 한 알 만큼만 떼어주셨더라면 이토록 곤란한 일은 안 겪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가끔 제사도 지내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주시면 받을 테니 나누어 주시려면 지금 당장 말씀.. 2021. 7. 26.
N-2 니케포로스&제스타시아 섬세하다고? 잘 모르겠다. 기억했을 뿐이다. 그것이 섬세하다는 것일까? 손바닥의 반이나 될까 싶은 발을 누르고 곡도로 본을 뜨는 감각이 섬세하다. 곧 나머지 발도 똑같이 본을 뜬다. 제스타시아와 볼 용건은 끝났다. 올 때 그를 당황스럽게 했듯 갈 때도 당황스럽게시리 거의 도약하듯 뛰어 사라진다. 섬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본을 뜬 나무판은 배 어드메에 던져 놓고(그렇다, 별 놀랍지도 않겠지만 정리를 모르는 자다.)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 나무껍질을 한창 벗겨낸다. 이곳에 신이 내려오는 일이 없다지만 나무를 위해 잠깐 대지의 여신에게 기도하고 나서 한 선원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텔레마코스로 본래 어느 귀족가의 노예이다. 힘이 무척 세어 궂은일을 많이 했으며 나이가 비슷해 친구.. 2021. 7. 26.
N-1 니케포로스&아이스킬로스 지상에 사는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빛은 구름이 가리지 않은 황금 전차를 잠시간 쳐다볼 수 있는 태양의 키스를 남기고 갔다. 이따금 그를 찾아 기도하고 싶거나 운명에 허락된 시간이 다했다고 생각했을 때 태양을 올려다보자면 그것은 눈을 멀게 할 것처럼 무섭게 빛나기만 할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 목을 꺾어 저 위를 보는 까닭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아주 잠깐, 눈을 불태우려 들지 않고 따뜻하게 빛나는 삽시간의 온도가 사랑을 증명하기 때문에. 뒤돌아 그의 신을 찾았다.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곳이 제단이라 했지. 니케포로스에게는 벽과 구름이 해를 가리지 않는 모든 곳이 제단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지상에 머물지 않고 바로 하계로 가버린 딸의 .. 2021.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