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0/니케포로스

N-2

by 곽제가 2021. 7. 26.

니케포로스&제스타시아

 


 

섬세하다고? 잘 모르겠다. 기억했을 뿐이다. 그것이 섬세하다는 것일까? 손바닥의 반이나 될까 싶은 발을 누르고 곡도로 본을 뜨는 감각이 섬세하다. 곧 나머지 발도 똑같이 본을 뜬다. 제스타시아와 볼 용건은 끝났다. 올 때 그를 당황스럽게 했듯 갈 때도 당황스럽게시리 거의 도약하듯 뛰어 사라진다. 섬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본을 뜬 나무판은 배 어드메에 던져 놓고(그렇다, 별 놀랍지도 않겠지만 정리를 모르는 자다.)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 나무껍질을 한창 벗겨낸다. 이곳에 신이 내려오는 일이 없다지만 나무를 위해 잠깐 대지의 여신에게 기도하고 나서 한 선원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텔레마코스로 본래 어느 귀족가의 노예이다. 힘이 무척 세어 궂은일을 많이 했으며 나이가 비슷해 친구로 자라 진심을 다해 모시고 섬기던 그의 주인이 죽을 때 텔레마코스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는데 조부 대부터 노예를 하던 그는 자유민이 되어서도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노잡이를 구하던 한 선원을 만났다. 그가 약속하기로 선장인 니케포로스는 씀씀이가 좋아서 그의 배에 오르는 목숨값을 생각하고서라도 쏠쏠한 제안이었다. 나중에 니케포로스를 만나자 그보다 머리 하나가 훌쩍 커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도 더 컸다. 몸이 어린 만큼 마음이 어린 선장이었다. 그는 귀족가의 노예로서 필요할 때 어디 가서 사야 하는 물건을 곧잘 만들었기에 노잡이로 타긴 했지만 별일을 다 할 때가 잦았다. 

 

 

“제스타시아 님께요? 예. 램프를 들고 다니시는 것쯤은 저도 알지요! 신발을 선물하신다고요. 예. 만들 줄 압니다. 세어볼 새가 있나요. 필요할 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면 뭐가 있어야… 이것으로요? 옳습니다. 나무껍질로도 만듭니다. 헤스티아 님께서 맨발이셨다고요? 제가 살다살다 그러한 일도 다 들어보고 오래 살기를 잘했군요. 그런데 이건 좀… 잘못하신 게 아닙니다. 제발 소리 지르지 마세요! 늙은이 귀청 다 떨어집니다. 가죽 쓰던 게 남아 있습니다. 가져오겠습니다. … … 여기요. 본을 떠 오셨군요. 칼로 하신 것입니까? 왼발이나 오른발이나 같지 않을까요? 어쨌든 가져오셨으니 이것을 발이라 생각하고 모양을 깎지요. 옳지. 잘 하십니다. 그럼 저는 왼편을 만들고 선장님께서 오른편을 만들면 되겠습니다. 신발을 잘 만들려면 반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낚시를 한 번 해본다고 두 번째 하는 낚시도 잘 되겠습니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도 하루 잘 걸었다가도 힘들어서 앉아 있는 경우도 잦지요. 벌써 다 하셨나요. 마음이 너무 급해도 안 됩니다. 급할수록 멀리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신발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거야 신발은 오래 쓰는 물건이니까요. 신발이 없으면 발이 어찌 되겠습니까. 삭정이에 긁히고 벌레에게 물리고 발톱에는 흙이 끼고 모래가 뜨거우면 데이며 여러 가지에 찔리고 베이고 망가지지요. 항상 맨발로 다닌다면 두꺼워지기야 하겠지만 인간의 부드러운 살이 나무와 가죽에 비하겠습니까. 방패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걷는 것은 고행이지요. 고통입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자꾸 발굽 얘기를 끌어오지 마세요. 제스타시아 님께는 발굽이 없잖습니까! 그렇게 소리치시면 늙은이 귀가 다 망가집니다. (왜 갑자기 주눅이 들었지? 이것은 참으로 별난 일이다.) 발밑이 단단해야 합니다. 자. 보자… 똑같이 자르세요. 잘 따라하셨습니다. 하하. 선장님께서 신발을 자세히 볼 날이 또 어디 있다고요. 네. 이것이 발바닥이 됩니다. 구두창이지요. 이것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내면 됩니다. 거기서 더 크시진 않을 것 같은데요. 그만하면 키가 더 자라시지는 않겠죠. 그리고 크시더라도 발은 더 안 자랍니다. 구멍을 뚫지요. 그래야 끈을 뀁니다. 잘 하셨습니다. 신발 만드는 사람이요? 집에서 만들면 되지 무슨 신발 만들어서 파실 생각을 하십니까? 그건 선장님 손이 너무 크셔서… 그럼 그냥 절 주시겠습니까? 하하! 네. 직접 하십시오. 천천히 하십시오. 오래 쓰는 물건이니 조심하여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왜 저를 시키시지 않고요. 네. 선장님, 꼭 제가 선장님을 키운 느낌이 듭니다. 이제 남에게 마음을 쓰시고 또 보이시는군요. 겨우 선물이 아닙니다. 그러시면 왜 예전에 받은 물건들을 다 보관하고 계십니까. 불지도 못하는 아울로스나 이젠 쓸 필요도 없는 베일, 구슬이 끊어진 목걸이, 깃털이 날아간 목걸이, 두 동강이 난 목걸이나 거추장스럽다고 받을 땐 욕을 한 팔찌도 있죠. 말씀을 하필 그렇게 하실 것까지야… 이건 제대로 안 되는군요. 묶는 것만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발에 맞거나 조금 클 것 같습니다. 왜긴요. 작은 신발은 신어도 큰 신발은 못 신으니 그렇죠. 험하게 쓰시지 않는다면 반년쯤은 갈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땐 또 다른 분이 선물해 주실 겁니다. 지금 신고 계신 신발도 선물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면서요. 그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면 평생 선물 받은 신발로만 걸으시겠군요. 네, 목걸이처럼요. 끝났습니다.”

 

 

텔레마코스는 니케포로스가 한 손에 신발 한 짝씩 덜렁덜렁 들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일터로 돌아갔다. 니케포로스는 제스타시아를 찾아 다시 종횡무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어디 손에 소중하게 올려놓거나 최소한 보기에 좋게 하지 않고 어디 강 건너가는 어린애처럼 그대로 신발을 들고 갔다. 텔레마코스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입 뻥긋 않고 신발을 신으라고 내민다. 눈 깜짝할 시간 기다리다가 “얼른 신어 봐.” 했을 뿐이다. 본뜬 나무판을 끼웠을 땐 괜찮았지만, 그리고 조이지 않도록 더 크게 만들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그래서 니케포로스는 가만히 서서 제스타시아가 내릴 선고를 기다렸다.

 

'글0 > 니케포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N-6  (0) 2021.07.26
N-5  (0) 2021.07.26
N-4  (0) 2021.07.26
N-3  (0) 2021.07.26
N-1  (0) 2021.07.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