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19 Where's my love 때를 말하자면 해 질 무렵이었다. 계절을 가르자면 그런 것은 없었다.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시대였다. 특히 사랑하는 두 연인이 살기에는 더욱더. 다만 이때에 구름이 수십 개의 주둥이를 뾰족하게 벼르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하늘을 겹겹이 포개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단델리온이 오키드에게 손을 뻗었다. 팔꿈치의 오금에는 엄지를 얹고 그리고 바깥쪽을 손바닥과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감싸서 아주 가볍게. 먼 우주의 쌍성계처럼 서로를 맴도는 두 몸뚱이는 닿고 나서야 조금 더 완전한 궤도를 이룬다. 따뜻하다. 차갑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처럼 체온이 섞여들며 가까워졌다. “힘들어?” “조금.” 듣는 이와 말하는 이, 처음과 끝을 분명하게 알기 힘든 대화가 입맞춤처럼 도란도란하다. 무엇을 말했는지는 중요.. 2021. 7. 26. [번역 괴담] [Reddit] 갤러헤드가 9번지로는 발도 들이지 마 Dellage 퍽! 얇고 견고한 물질이 맥없이 터지는 소리. 어른어른한 눈으로 주방을 가로지르던 여자가 벼락 맞은 듯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그가 허리를 숙여 컵의 허리께를 주워들고 순간 차가운 호선이 살 위를 달렸다. 한여름의 아릿함은 종종 섬뜩한 추위와 상동하게 느껴지기에. 다친 사람은 하나에 셋이 눈을 찌푸린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간 하나 요정 둘 중 혈향을 모를 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어둠 속에서 떨어진 피가 물로 착각하기에는 따뜻하다. 유디트가 가까이 다가가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 오염을 공기 중으로 흩어낸다. 그것이 한없이 희석되어 허무로 돌아가도록. 치유의 능력은 없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유리 조각 따위에 살이 베이지 않는 두 소년이 파편을 그러모아 .. 2021. 7. 26. 귀향 유디트 나는 요정이에요. 여러분께 저 자신을 좀더 정확하게 설명하고프지만 제가 태어난 곳, 부모의 이름, 이 따뜻한 숲, 제가 노니는 호수와 바람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언어와 판이하게 다르니 그럴 수 없어요. 저는 이곳에 오래 살았어요. 한때 이곳에서도 요정의 아이들이 머리를 누이고 물을 마셨죠. 우리와 다정한 문답을 나누고 성질 나쁜 운디네를 혼냈어요. 무시무시한 거인의 미로에도 들어갔어요. 그곳으로 들어간 많은 이들이 나오지 못하거나 나오지 않았지만 한 명 빼고는 모두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았다고 해요. 참, 그 한 명은 행복하니 제 이야기에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북풍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이에요. 부디 이 말을 받으시고 가슴 속에 오래 품어 새로운 이야기꾼이 되세요. 처음으로 이야.. 2021. 7. 22. 은파Silvery waves 은파Silvery waves https://www.youtube.com/watch?v=aNxUVhyGF8E 유디트 일 라니루 아르하 일 라니루 도어 스토퍼가 성급하게 닫히려 깔그락깔그락 바닥을 훑었다. 구두 앞코가 얼른 머리를 들이댄다. 아르하가 반대편에서 손을 짚었고, 문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나오자 태양과 소년 사이에 유디트의 노오란 머리통이 일식처럼 끼어들어 그림자가 졌다. 그는 아르하가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불쑥 낮게 허리를 수그리고는 아르하의 귀여운 가마 위로 낮은 실크 해트를 씌웠다. “아르하, 도어 스토퍼가 이렇게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문이 언제 닫힐지 모르니까 거기 머리를…” “문에 부딪히지 말라고.” 아르하는 흔쾌히 하려던 말을 잊기로 했다. 두 사람은 새해 벽두부터 금은주옥으로 꾸미.. 2021. 7. 2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