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0/일마6 into the ___ 흘기는 눈에 일마가 짝다리를 풀고 대신 팔짱을 꼈다. 기둥에 어깨를 붙이고 서니 그제서야 이사벨이 고개를 돌린다. 별과 별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단숨에 도약하는 이 시대에도 난간에 기대는 행위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매 층마다 웹이 깔려있겠다만 공포를 극복하기에는 인류의 진화가 느리다. 있는 편이 훨씬 도움 되기도 하고. 일마는 ‘떨어지면 뭐 어때’ 같은 표정이긴 했지만 오지랖이 어찌나 넓은지 남의 몸도 제 것처럼 하는 이사벨에게 면전에서 신경 끄라고 할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딴 방향을 보고 있는 이사벨의 표정을 살필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방향을 같이 쳐다볼 수는 있다. 두 아이가 투명도가 낮은 바닥 아래로 수백 명의 학생이 오가는 모습을 본다. 더 잘 보려고 발도 뒤로 치워가면서. 다들 수업을.. 2021. 8. 5. 일마/유디트 들불연 로그 (TRPG X. 세션 다녀오기 전 개요로만 작성) “원래 사람들은.” 손을 거두자 눈앞이 약간 밝아졌다. 매섭게 끊어쳤던 말을 잇는다. 유디트는 돌아보지 않는다. “건방진 걸 나쁘다고는 하지 않아.” 하지만 넌 어쨌든 건방진 새끼야. 카우치에서 일어나자 잠깐 사방이 빙글 돌았다. 익숙한 일이다. 상관없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가죽 슬리퍼에 발을 도로 끼웠다. 아까 점심 식사하기 전에 마음대로 걸어 다니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나머지 한 짝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오래되고 형편없이 낡은 슬리퍼는 개미새끼 팔에도 들릴 만큼 얇아서 슬리퍼를 신으나 마나 걸음에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유디트의 생각과 달리 일마는 슬리퍼만큼이나 얇은 유리창을 열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슬리퍼 유실 메들리가 시작될 판이었지만 이 자리에 일마를 만류할 만큼 미친 황후 발바닥의 안.. 2021. 7. 22. 음악의 순간 일마와 리산더와 슈테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경구, 들어보지 못한 사람 일찍이 없겠지. 슈테판 파울루스에게는 차라리 직업병에 가까우며 일마를 앞에 두고서는 일과나 다름없다. “일마” 불렀으나 잘 돌아보지 않는 이름. 아이들은 모르겠으나 어른이라면 일마의 기묘한 태도를 쉬이 눈치채기 마련이었고 더불어 요안의 까지 목격한다면 아이든 어른이든 모르는 쪽이 멍텅구리다. 일마는 아이들 사이에 섞이려고 하지 않았다. 소위 ‘선생님’ 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퍽 까다로웠기에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면 찾아온다는 점만이 다행이었다. 일마는 슈테판을 조금쯤 경계하는 모양이다만 슈테판 자신은…, 뭐, 무슨 단어가 나오든 일마의 면이 안 서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생략하겠다. 요새는 리산더와 붙어 다니는 듯했다. 평소라면 몰랐겠.. 2021. 7. 22. 폭우 일마와 구스타보 하늘이 쪼개지는 굉음이 난다. 기록적인 폭우였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니 구름이 없어지는 모양이 보일 정도였다. 눈알의 뒤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간다. 아프진 않다. 아프면 뭐 어떤가. 요즈음 들어 엘프리드는 밤을 보내는 법을 잊은 지 오래였다. 무한한 (반쯤이라도) 삶이란 (이게 삶이라면) 그렇다. 스러지고 고장나도 얼마든지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강인한 육신은 제대로 된 실체도 없으면서 잠을 자든 말든 식사를 거르든 쑤셔 넣든 순전한 본인의 버릇으로만 작동했다. 엘프리드는 밤을 지새우는 법을 체득한 지 오래다. 척척한 손이 바깥에서 창틀을 만지작거리노라면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몇 번이고 쇠고리가 맞물리지 않는 소리를 참아야 했고 어쨌든 조금의 틈으로 엘프리드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 2021. 7. 2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