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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 다리우스&레일라 “무엇이 못마땅해서 그래요. 맨날 툴툴 대구.” 다리우스의 얼굴에서 아릿한 노기와 더없는 흔연함 사이에는 차이라고는 고작 그의 세 치 혀밖에 없었다. 레일라의 얼굴에서도 아릿한 서운함과 더없는 낭만 사이의 차이라곤 고작 세 치 혀밖에 없다. 한 쪽은 자못 진지하게 단속한 얼굴이 싱겁다. 나머지 한 쪽은 아직 눈매가 동그랗고 애매하게 다문 입이 인상으로 굳어버린 미소를 그렸다. “대답인가요?” 책망이 아니었다. 책망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잘못이다. 그는 그 자리에 아주 쪼그려 앉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뜯어본 레일라는 몸태가 가늘고 얼굴엔 솜털이 소복하게 올라와서 더욱 앳되어 보였다. 몸뚱이야 날렵하지만 수완이 없다. 레일라는 검을 들었지만 사람을 찌르거나 벨 수 있.. 2021. 7. 25.
D-3 사기꾼과 황녀의 거 되게 시건방지고 경우 없는 대담 다리우스는 황녀가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 까닭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겨우 셋뿐이다. 이유가 대체 뭘까? 그는 과연 앉혀만 놔도 군계일학이지만 세상엔 그만큼 무예가 탁월하고 생김이 거친 사람이 많다. 황제의 오촌 누이? 어차피 다리우스는 자기보다 조금만 지체가 높아도 대화를 꺼려서 그렇게나 가늠할 수도 없이 고귀한 핏줄쯤이 되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자르의 모든 인명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큰 문제지만. 아사드 세르메네스의 예측할 수 없는 거동이 싫었고 하도 커서 추구하는 것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눈이 싫었다. 비슷하게 꺼림칙한 사람으로는 파샤 바르달리아와 소하 코르마가 있는데 철저한 다리우스의 관점에서 세 명의 차이를 분별해보자. 그.. 2021. 7. 25.
D-2 다리우스&레일라 “청금석의 빛을 가져온 얇은 천이에요. 머리를 묶을 때 사용해요. 다리우스의 시야가 가려질까 걱정이 되어서요.” 레일라는 숨도 차지 않은지 빠르게 덧붙였다. “받아 줄 거죠?” 세상에는 다양한 안료가 있다. 햇빛에 색이 하얗게 바래는 인디고부터 돌을 갈아 만든 울트라마린까지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각자의 아름다운 파랑을 소유하길 원했다. 다리우스 네예스타니에게도 파란 옷이 하나 있다. 단일 염료가 아니라 채도도 낮고 수예직공의 손을 타지 않았지만 여전히 끔찍하게 비싼 이 천이 초라해지는 순간에 다리우스는 수치를 모르고, “새 끈 주고 헌 끈 받는군요.” 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어 햇빛이 늘어지며 광택이 어슷하게 비추는 순색의 머리끈을 향해 조용히 감탄했다. 그는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펼쳐.. 2021. 7. 25.
D-1, 다리우스 네예스타니의 일주일 다리우스 네예스타니의 인트로 로그 01 필요할 때가 아니면 주의력이 떨어지는 다리우스를 먼저 발견한 건 물론 샤자르였다. “넌 여기 무슨 일이냐?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러 온 모양이지?” “아무리 황궁이라도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탈이 납니다.” 심드렁하다. 시건방지다. 재수 없다. 수틀리면 손이 먼저 나가는 세르메네스 비공식 인골분쇄기 앞에서 당당하게 뱉을 법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인골분쇄기도 한 인물 했다. 그리고 다리우스의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화법에 익숙했다. 고의는 아니다. 다리우스가 들으면 항변하겠지. 묻길래 대답한 것뿐인데 도무지 뭘 바라는지 잘 모르겠다며. 샤자르가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다리우스도 사람이라 상대방이 웃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그로서는 거의 박장대소에.. 2021.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