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포로스&아이스킬로스
지상에 사는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빛은 구름이 가리지 않은 황금 전차를 잠시간 쳐다볼 수 있는 태양의 키스를 남기고 갔다. 이따금 그를 찾아 기도하고 싶거나 운명에 허락된 시간이 다했다고 생각했을 때 태양을 올려다보자면 그것은 눈을 멀게 할 것처럼 무섭게 빛나기만 할 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 목을 꺾어 저 위를 보는 까닭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아주 잠깐, 눈을 불태우려 들지 않고 따뜻하게 빛나는 삽시간의 온도가 사랑을 증명하기 때문에. 뒤돌아 그의 신을 찾았다.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곳이 제단이라 했지. 니케포로스에게는 벽과 구름이 해를 가리지 않는 모든 곳이 제단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지상에 머물지 않고 바로 하계로 가버린 딸의 마음을 오히려 축복으로 보듬은 아폴론을 생각했다. 신은 무정하다지만 평생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슬픔이 수없이 거듭된들 덜 슬플까. ‘나의 빛이 너에게서 어둠을 몰아내리라!’ 두 번쯤 눈을 깜빡이자 따끔한 눈물이 고여서 시선을 떨궜다. 아폴론을 부른다. 내 어머니의 아버지시여,
당신이 돌보는 자가 저에게 와 천수보다 이른 죽음을 바란다고 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슬픔을 곡할 정도로만 남겨두었습니다. 두려움은 심장에 얼음꽃이 피어날 정도로만 남겨두었습니다. 후회는 잠들기 전에 머리를 괴롭힐 정도로만 남겨두었습니다. 저는 그가 사라지면 장작을 높게 쌓고 불화살을 놓아 다음날 뼈를 추려서 가루를 내겠지요. 남풍을 타야 하니 되도록 높은 절벽에 올라가 그가 담긴 주머니를 열겠지요. 사람들은 아이스킬로스가 죽었다고 말하겠지요. 그가 사라지지 않으면 어떨까요. 칼리크라테스로 사는 여자는 매일 밥을 먹고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잠에 들겠지요.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더는 견디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겠지요. 이미 알고 있는 사소한 행복과 피할 수 있었던 불운이 수없이 교차하여 하루를 만들겠지요. 칼리크라테스가 죽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스테넬로시아는 반신으로 태어나 괴물로 살다가 어머니로 죽었습니다. 지나가는 영웅이 아니라 열 살짜리 켄타우르스가 죽였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킬로스는 남자로 태어나 왕자로 과업을 쌓고 영웅으로 죽고자 합니다. 칼리크라테스는 공주로 태어나 저주에 머무르다 하얗게 죽겠지요. 당신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땅에 매여있는 것이 저 아래로 하강한 것보다 두려우셨습니까? 당신은 어떠했습니까? 세상 모든 적을 손쉽게 찢어 죽이던 강력한 딸이 고작 저에게 죽임당해 사라지고 당신만 남겨졌을 때에 눈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습니까? 저에게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실은 그가 떠나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 옆에 매여있을 날이 두렵군요. 또 이렇습니다. 그가 떠나는 것이 싫습니다. 칼리크라테스로 살아 오늘 올린 기도를 내일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돌보는 자가 저에게 무어라 물었습니까. 생각났습니다. 무엇이 두려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로부터 눈을 떨궜을 뿐이다. 니케포로스는 그를 보지 못했다. 아이스킬로스는 니케포로스를 볼 수 있다. 새가 여기에서 저기로 날아가고 느린 구름이 해를 가리도록 긴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그는 기다리기에 능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데도 내 옆에 매여있는 것.”
그것이 다였다. 문득 손을 펼치자 따뜻한 해풍이 앉았고 주먹을 쥐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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