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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0/다리우스

D-6

by 곽제가 2021. 7. 25.

다리우스와 아말라

 


 

아말라 쿠마르-자만, 나는 당신이 보았지만 늙은 학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은 바다 너머 진흙으로 빚은 여자가 신들이 준 상자에 담긴 악몽과 재해와 환난을 모두 열어서 떠나보내고 남은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것은 막연한 문장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없더라도 믿고 싶고, 있더라면 갖고 싶을 단 하나입니다. 

 

“아말라 님, 당신은…”

 

목이 메말라서 침을 한번 삼켰다. 어깨가 쑤시고 발가락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미필적 고의가 다분한 수 초의 시간이 흘렀다. 그 자신보다 그의 몸뚱이가 먼저 저며드는 감정에 반응했다. 도망가고 싶고 동시에 이 자리에 박제가 되고 싶었다. 진정으로 해야 할 말을 하기 전 입부터 열었더니 목구멍이 턱 막혔다. 그것이 바로 침을 삼킨 이유였다.

 

“반드시 교수가 되어 강론을 해야겠습니다. 집에서 미리 외워 왔다 해도 대단하다고 감탄했을 겁니다.”

 

다리우스는 아말라가 고마웠다.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는 방법은 모두들 알다시피 하늘의 별, 사장의 모래보다 많고 천지삐까리만큼 즐비하다. 어떤 기준은 이 수많은 인구를 거의 균등하게 반으로 가르고, 어떤 기준은 이 할과 팔 할로 가른다. 아니면 어떤 기준은 겨우 한 줌과 무량대수로 가른다. 지금은 다리우스를 변호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눠 보기로 하자. 이 기준은 세상 사람을 한 명과 나머지로 나눈다. 보통 다리우스를 모르는 사람에겐 다리우스를 위해 변호할 거리가 없다. 다리우스는 인격자에 가깝다. 다리우스를 아는 사람도 다리우스를 위해 변호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리우스는 잡놈 그 자체다.

 

 

“천하의 개잡놈 주제에 무슨 변호가 필요하단 말인가.”

- 다리우스의 모친, 샤가예프 세페리의 일기에서 발췌.

 

 

그리고 다리우스는 세상에 태어난 지 약 37년 만에 첫 번째 변호인, 아말라 쿠마르-자만을 마주하게 된다. 아말라는 다리우스의 특별할 것 없이 잡스러운 이유를 양지로 끌어왔다. 그를 아직 숨 쉬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현재에서 피라미드 안에 걸어 들어와 박혀 있는 현재로 데려왔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죽음 지척까지 현실감을 끌어내려와 말한다. ‘그건 개죽음이 아니에요.’ 그리고 명징한 두 눈으로 소리친다. ‘방금 선생님이 개죽음이라고 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하루라도 나이를 더 먹은 그때의 선생님이 용서해 주세요.’ 

 

그는 아말라의 말을 기억하겠다고 분명 약조하였으므로 그 말을 최대한 기억했다. 아말라의 말대로 세상에 다리우스를 위해 변호할 사람 한 명 정도는 그의 인생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사막의 도깨비불처럼 막연하고도 분명한 희망 하나쯤이 그의 마음 속 언저리에 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끊임없이 먹어서 누워 있게 될 때에도 개죽음인지 죽음인지 스스로를 판가름할 때. 그때 반드시 상자 안에서 꺼내서 펼쳐볼 문장 하나가.

 

“그럼 그때 말씀하시겠지요? 내일까지 가능하겠지, 신입생? 이라고요.”

 

… …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은 저보다 무엇이든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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