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과 황녀의
거 되게 시건방지고 경우 없는 대담
다리우스는 황녀가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 까닭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겨우 셋뿐이다. 이유가 대체 뭘까? 그는 과연 앉혀만 놔도 군계일학이지만 세상엔 그만큼 무예가 탁월하고 생김이 거친 사람이 많다. 황제의 오촌 누이? 어차피 다리우스는 자기보다 조금만 지체가 높아도 대화를 꺼려서 그렇게나 가늠할 수도 없이 고귀한 핏줄쯤이 되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자르의 모든 인명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큰 문제지만.
아사드 세르메네스의 예측할 수 없는 거동이 싫었고 하도 커서 추구하는 것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눈이 싫었다. 비슷하게 꺼림칙한 사람으로는 파샤 바르달리아와 소하 코르마가 있는데 철저한 다리우스의 관점에서 세 명의 차이를 분별해보자.
그의 생각에 파샤가 다리우스의 네 개의 사지를 우마에 묶어 제각기 달리게 할 전사. 소하 코르마가 다리우스도 모르는 죄를 낱낱이 밝혀 돌팔매질의 선봉장에 설 인재라면, 아사드 세르메네스이거나 파란은 다리우스의 아가리에 증좌를 물려 공으로 뭉쳐서 다니슈멘트까지 굴려 보낼 만한 인물이었다.
겨우 셋은 무슨. 정정하자. 다리우스는 황녀가 구체적으로 싫었다고. 게다가 당사자가 한 명이면 이름이 몇 개든 아무렇게나 부르면 됐지 파란이라고 구태여 호명해 드릴 때까지 매처럼 눈을 홉뜨고 보고 있던 상황도 싫었다. 아사드 세르메네스는 꼭 자기가 파란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처럼 굴었다. 어쨌든 아사드 세르메네스가 재미로 평민 행세를 하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듯 다리우스가 감히 눈깔을 희게 뜨고 대꾸할 수 없는 건 같다. 파란은 언제든 내킬 때 아사드 세르메네스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세르메네스가 파란으로서 충고했을 때 격랑에 말려드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존재만으로 세르메네스의 의사 무리에게 모욕이 되는 의사와 두피와 손톱 아래에 흙먼지가 낀 황녀의 건방지고 경우 없는 대담은 이런 결말로 끝난다- 그는 황녀를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어쩌면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재정적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의사가 되어도 괜찮겠다. 아직도 좀 쑤시고 뻐근했으면 저런 말은 안 했겠지.
이 대화는 황녀의 마음대로 되었는가? 그는 단순하기 짝이 없어서 당장 허물을 벗기지 않겠다는 말로만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다리우스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는 그래서 황녀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다리우스가 조금만 더 비이성적이었더라면(돌머리에도 바닥이 있다) 세계의 재원이 몰려들고 황녀의 마음에 드는 소리만 지껄일 올 화이트 인테리어 전당을 하나 세워주겠다고 약조했을지도 모른다.
다리우스는 와본 적도 없는 길과 위기를 넘어 사막에 왔다. 참과 거짓은 따로 떼어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는 아닐 땐 가짜이고 맞을 땐 진짜가 될 것이다. 필요하지 않을 땐 가짜이고 필요할 땐 진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다리우스를 실컷 야료할 때 가짜가 되고 상찬하고 좋아할 때에나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네예스타니일 때 진짜이고 세페리가 되었을 때 가짜가 된다. 여전히 둘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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