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 벼룩의 이야기
옛날에 어떤 벼룩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 벼룩을 사랑해서 아기 때부터 보화와 비단으로 만든 침구와 백화난만과 만권시석으로 꾸민 유리병 안에 그 벼룩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넣어 키웠다. 벼룩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고 온통 반짝이는 장식이 좋고 부드러운 이불이 좋고 지지 않는 꽃과 마르지 않는 책이 좋았는데 딱 하나 옥의 티가 있었다. 마냥 통통 뛰면 상관이 없는데 무릎에 힘을 주고 뛰면 자꾸 머리가 뚜껑에 부딪혀 아팠던 것이다.
“저도 실컷 뛰고 싶어요.”
“어머! 울지 마련. 자, 보아라. 여기 넓은 유리병에 옮겨 주마.”
병목을 이어붙이자 오솔길이 나타났다. 벼룩이 그 사이로 지나갔고 이따금 벼룩이 떼를 쓰면 또 다른 병목을 타곤 오솔길을 지나 넓은 유리병 안에서 뒹굴고 놀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릎에 힘을 주고 뛰면 뚜껑에 머리가 부딪혀 골통이 찡 울렸다.
그는 그래서 평생 걷는 둥 마는 둥 뛰는 둥 마는 둥 했다. 뚜껑보다 높이 뛸 수 없는 벼룩을 그래도 사람들은 사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먼 나라 제국의 황제가 세상에 그의 목소리를 알렸다. 신비를 찾을 것이다!
“나는 알기를 원하노라!”
벼룩도 알기를 원했다. 그러자 사람 중 하나가 말하길 “그렇다면 이제 벼룩이 장성했으니 유리병 바깥으로 한 번만 내보내주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유리병을 들고 황제의 나라로 가 벼룩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그가 이번만큼은 나가보는 대신 항상 안전하게 지내고 언제고
정직하기를 요구했다. 착하게 지내야 한다. 그래서 벼룩은 기쁘게 그러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자유 벼룩이 유리병 바깥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떤 나방이 나타났다. 나방은 나방인데 날개가 아름답고 언젠가부터 나비 행세를 하고 있어서 다른 이들도 그를 나비라고 불렀다. 나비와 벼룩은 기상천외하게도 금방 어울려서 놀았다. 친하게 지내는 며칠이 지났다. 나비가 갑자기 벼룩에게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합니까?”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한계까지 수축하여 단숨에 성채를 오르고 교각을 건너는 다리로 조금밖에 뛰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화가 난 것 같았다. 잘못을 했던 걸까. 무엇이 그의 화를 누그러트려 줄지 찾고 싶었다. 더듬 변명을 한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나를 가두는 유리병이 두려워요.”
나비가 찬찬 생각해서 말했다. 언젠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고. 그리고 화난 적도 없이 누그러진 나비와 벼룩은 마지막으로 한번 나가기로 한다.
“말과 함께 걷는 걸 상상하고.. 그걸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그뿐이에요.”
“알겠습니다.”
다리우스가 말갖춤을 하나씩 빼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차례대로 굴레, 재갈, 안장대, 등자였다. 여러 차례 몸을 죄는 마구가 몇 꺼풀로 벗겨지니 온통 들썩이고 쓰러지는 소리 가운데서 눈이 순한 말만 꼬리로 자기 장딴지를 연신 두드릴 뿐.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다리우스는 말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고삐를 당기기는 급할 때나 하면 될 일이었다. 마침 둘이 지나갈 가도로 서편으로부터 호박같이 영롱한 일광이 짓쳐들어온다. 다리우스와 레일라가 그 길을 통과했다. 장비 일체를 싹 떼길래 나가지 않는 줄 알고 서운했던 말이 몸뚱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간다니 신나서 땅을 박차듯이 걸었다. 말을 따라 서둘러야 했다. 여러 개의 문을 나섰고, 이젠 레일라의 눈에도 익었을 시장바닥을 돌아다녔다. 다리우스는 그를 자기 아는 가게로 데려가 손으로 램프를 켜게 시킨 후 빠안 램프에 붙은 색유리 모자이크가 난반사하는 모습을 보더니 새로운 램프를 샀다. 찐 옥수수를 사 낱알을 떼라고 또 시키고는 그의 오므린 손바닥에 부어 말을 먹게 했다. 사람 간식으로는 화덕에 찰싹 붙은 납작한 빵을 한참 구경하다가 주인이 빵을 내놓자마자 뜨거운 채로 먹었고 가는 길엔 심부름꾼을 찾아 다리우스의 집으로 램프를 배달시켰다. 세 개의 그림자가 몇 시간이고 비스듬히 땅 위를 기어다녔다. 시간이 늦어지자 하도 길어서 다른 사람에게 밟히거나 건물에 섞이고 가끔은 인파의 여러 그림자와 하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 그러했듯 마지막에 남은 건 세 개의 그림자 뿐이었다.
나비는 제깟 게 잘난 것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벼룩이 이상해 보여서 그런 일을 벌였다. 변명해보자면 나비가 생각하기로는 이랬다. 황제가 그 비행에 가까운 뜀뛰기 능력을 높이 사 신비를 찾는 여정에 벼룩을 넣었지만 이대로 절벽에 세워놓고 “자, 할 줄 안다는 것 알고 있으니까 여기서 뛰어 보세요.” 라고 남일 씨부리듯은 못한다. 마침내 시장 바닥을 다 들쑤시고 난 뒤 나비가 벼룩에게 말했다. 벼룩 님, 잘 들으십시오. 당신이 오늘 당장 뛰지는 못할지라도 내일부터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우스가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레일라에게 필요 이상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내일과 모레와 그 이후와도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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