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레일라
“청금석의 빛을 가져온 얇은 천이에요. 머리를 묶을 때 사용해요. 다리우스의 시야가 가려질까 걱정이 되어서요.”
레일라는 숨도 차지 않은지 빠르게 덧붙였다.
“받아 줄 거죠?”
세상에는 다양한 안료가 있다. 햇빛에 색이 하얗게 바래는 인디고부터 돌을 갈아 만든 울트라마린까지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각자의 아름다운 파랑을 소유하길 원했다. 다리우스 네예스타니에게도 파란 옷이 하나 있다. 단일 염료가 아니라 채도도 낮고 수예직공의 손을 타지 않았지만 여전히 끔찍하게 비싼 이 천이 초라해지는 순간에 다리우스는 수치를 모르고,
“새 끈 주고 헌 끈 받는군요.”
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어 햇빛이 늘어지며 광택이 어슷하게 비추는 순색의 머리끈을 향해 조용히 감탄했다. 그는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펼쳐 아까 레일라가 ‘머리끈’ 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가져간다. 어떤 귀족의 응접실이나 성전의 벽화, 황궁의 천장에서나 실컷 본 그 색이었다. 아름답다. 무엇으로 청금석을 흉내 냈는지는 짧은 가방끈으로 알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황제부터 거지까지 두 눈만은 귀천이 다르지 않게 똑같이 타고난 것이다. 머리를 길러본 이후로 별달리 제 머리를 묶어본 적 없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폼으로 머리 꽁무니를 동여맨다. 머리카락이 두피를 당기는 것이 싫어 대충 늘어지게 두었다.
그는 슬플 때 목놓아 우는 법 없고 화날 때 소리치는 법 없는 사람답게 이렇게나 기쁠 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얌전히 머리를 묶고 나서 손을 앞으로 떨어뜨렸다. 그가 또 무슨 말을 하는지 기다리고 있는 레일라의 얼굴이 두 손 사이로 아주 잘 보였다. 제법 말쑥한 무지개 같은 총천연색 자태가 곱고 하루 종일을 닦아 놓은 그릇처럼 반짝거렸다. 그래. 그릇처럼. 구워 만든 그릇은 열을 주면 깨지고 차갑게 두면 쪼개지는 게 물로 헹구고 나서 닦지 않으면 얼룩이 지는 데다 그렇다고 쓰지도 않고 박아 두면 어떻게든 바래고 만다. 다리우스는 도무지 레일라의 신분과 인간인 레일라를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웠지만 도움이 감사하다고 레일라가 찔러주었던 돈을 주머니 안에서 굴리고 나서, 레일라의 머리를 꼼꼼하게 두른 스카프를 다시금 바로 해주고 나서, 그리고 뒤통수에 손을 올려 그새 끈이 날아가지 않았는지 당기어도 보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가르마를 따라 두드려 보고 나서 레일라가 그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허리를 수그렸다. 무릎을 굽힌다. 그러면 다리우스는 낮은 사람이 되고 레일라는 높은 사람이 되는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이 순간 레일라에게 핀잔을 주는 것도 모자라 건방짐이 치도곤을 쳐도 모자라게 얕은 한숨을 쉰다.
“왜 언제나 곧바로 돌려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구십니까?”
더러는 이렇게까지 물어 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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