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를 만난 하스마
한가로운 오후다. 샤키르 교수가 보트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거품에 연신 콧잔등을 얻어맞던 중이었다. 누가 목소리를 쭉 째가며 교수의 이름을 불렀다.
나뭇잎이 많으니 잠시라도 바람 잘 날 없구나!
교수는 스승 된 자로서 귀에 메다 꽂히는 고주파를 무시할 수 없어 일어났다. 아기 새처럼 앙증맞은 학생들이 호들갑을 떨기 좀 전에 엉덩이를 찧어 꽉 하는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하스마의 목소리 같았다. 원체 조용한 아이가 웬일일까? 하스마 드리시는 별일도 없는데 벌벌 떠는 게 귀엽기는 하지만 바다 위에서 놀라는 법은 도통 없었다. 수영도 아주 잘했고 가만 보니 오히려 위기에 처했을 때 머리 회전이 팽팽 돌아가더라. 해파리에 쏘였는데도 학생들을 불러 보트 위로 내쫓고 나서야 교수님을 부를 만큼 침착했다. 치료받으면서 울긴 했지만.
자, 여기서 다시 질문. 하스마가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오늘도 인어는커녕 참치도 만날 일 없으니 오늘 자 미션은 물장구뿐이다. 교수라고 다를 바는 없다. 혹시 해파리라도 나타나면 물리치는 게 업무다. 아! 학생의 미션은 이제 두 개다. 하스마의 낚싯줄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바다는 넓으니까. 괜히 얼쩡거리다 몸에 구멍이라도 나면 즉시 상처 부위를 소금물에 절이게 된다. 치료고 나발이고 끔찍하게 아프겠지? 그래서 하스마도 외롭긴 하지만 괜찮다. 그렇다! 하스마는 혼자였다. 처음 하스마가 낚싯대를 들고 왔을 땐 몇 명이 같이 앉아 구경도 했는데 낚시는 한 시간을 하면 5분만 재밌고 55분은 따분하게 광합성만 한다. 에이, 재미 없어. 이것이 하스마에게 발생한 이변을 누구도 즉시 눈치채지 못한 경위이다.
“이, 인어다.”
칼로 쑤시는 것처럼 꼬리뼈가 찡한 가운데 하스마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흰 팔이 뱃머리를 짚었다. 손톱이 벼린 것마냥 날카로운 그 손은 하스마보다 작아 보이기도 했는데 확실히 크지는 않았으며 그전에 일단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지고 너무 커서 생각을 알 수 없는 두 눈이 동그랗다. 말 안해도 알겠지만 인어였다. 분명! 인어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더니 뱃머리를 짚지 않은 손으로 낚싯바늘을 턱 보트에 떨어뜨렸다. 아무래도 꿰어 놓은 생선은 자기가 먹은 모양이었다. 인어는 하스마의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다 따라하듯 입을 둥글게 벌렸다. 생선 살이 이빨 사이에 겨우 끼어 있었다. 열 없이 창백한 피부에서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오로지 팔힘으로 보트를 짚고 솟아나 안쪽으로 굴러들어왔다. 한순간 배가 출렁 기울었지만 어쩐지 인어는 균형의 달인이었다. 부력의 세계에서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햇볕에 물기가 마르는 게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지 아미를 찌푸렸는데, 보트 밖으로 삐쳐나온 지느러미로 바닷물을 연신 때려 하스마에게 물이 튀었다. 하스마는 이 감정의 이름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다. 답은 경이였다.
인어는 어느 상급생이 허겁지겁 수면으로 뛰쳐나와 괴성을 질러도 눈썹 한 올 까딱이지 않았다. 차례로 인어가 나타났다고 미친 닭처럼 손발을 휘적거리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도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기만 할 뿐이었다. 대경실색한 샤키르 교수님이 멋지게 달려올(정말로 달려왔다. 하스마는 샤키르 교수님의 딱 적당히 살랑거리는 갈색 머리카락과 등 뒤의 태양이 비추는 후광으로 말미암아 교수님이 예수님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때에도 인간들이 재미있다는 듯 응시하기만 했다. 샤키르 교수는 달려오는 와중에도 살짝 어이없었다. 뭐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찰박. 찰박.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아니, 아까까진 평화로웠는데 두리번거려 소요의 근원을 찾자 전혀 기대하지 않은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스마는 성정이 해맑아 인어가 무섭지도 않은지 얼굴이나 들여다보고 있고 학생들은 없는 사진기를 찾았다. 인어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아무리 어려도 인어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손아귀 힘을 뿌리치기는커녕 3분 안에 기절한 채 물속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 나쁜 마음을 안 먹어도 큰일이다.
누가 낚시로 인어를 잡아!
다행스럽게도 인어가 순순히 샤키르 교수의 손에 바다 밑으로 돌아갔다. 불법 포획 건으로 기소당할 일은 없겠다. 한편 하스마는 방금 추락할 뻔한 블뢰종과 드리시 가의 명예가 지켜졌는데도 눈의 초점이 풀린 채였다. 인어의 마법인 줄 알고 검사했지만 멘탈의 문제일 뿐. 하스마는 안전하게 블뢰종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육지를 밟고 어떤 에가 선배의 손을 잡은 채(말랑했다) 기숙사로 돌아와 딱 한 마디 하고 잠들었다.
“나 인 어 보 고 왔 어!”
쿵.
하태공이 인어를 낚아올린 사건은 아직도 인어 교류회에서 회자되었다. 사건 발생부터 종결까지 인어의 일거수 일투족에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긴 하지만 가장 지지받는 의견은 ‘돌아갈 땐 좀 토라져 보였다’ 는 것이었다. 토라져? 흠… 인어가요? 여기서요? 잘못 봤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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