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고 완전한 진짜들의 경주
연향(@hyangzzan1211)님의 커미션입니다.
마법사들의 세계는 쌀쌀하다. 다이애건 앨리의 아무나 지나가는 마법사를 붙잡았을 때 냉혹하게 눈을 홉뜨며 지나칠 확률이 높다는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들의 세계는 쌀쌀했다. 머글의 기찻길이 마찰열로 휘고 있을 때 마법사들은 차가운 불꽃이나 잠시의 멀미, 아니면 허공을 가르는 빗자루로 창백한 푸른 점을 마음대로 유람한다. 그들의 세계에 갖은 집중으로 흐르는 땀을 제외하면 ‘열’이라는 것은 끓는 주전자나 가지고 있지 마법사에게 속하지는 않다. 하다못해 살인 저주도 한번 쏘면 픽하고 기절처럼 쓰러져 죽으니까. 머글의 전투에선 피가 터지면 팍, 뼈가 부러지면 우드득, 비명을 지르면 악 소리가 나지. 그것이 머글과 마법사의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마법사들의 싸움도 처절해지면 다르지 않나 보다.
불을 사람이 내고 사람에서 피가 물처럼 솟아 다시 불을 꺼뜨린다. 그런 이유로 단델리온의 주위에는 마른 낙엽 하나도 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점점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끊어지는 중이었다. 피가 두세 줄기만 나도 냄새가 코를 뚫는데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다. 단델리온이 억지로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누가 치료하러 달려오는지 본 것은 아니다. 오키드가 오는지 봤다. 그는 오키드를 기다리기 위해 연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경이 정말로 끊어지면 덜 아플 텐데 그러지도 않고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다. 당연하다. 누구나 단델리온의 출신성분에 관해서는 슬리데린에 간 것은 잘못이라고 실컷 재잘거리되 ‘끝을 모르는 탐욕과 인내심은 끝내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으니까. 단델리온은 한참이나 흙먼지에 쓸려 벌써 땟국이 절절 흐르는 망토를 말아쥐었다. 너무 아파 보이면 오키드가 근심할텐데. 억지로 허리를 들어 망토를 빼고 봄바르다를 맞아 찢어진 옆구리를 가렸다. 허리솔기가 터져 있었다. 얼른 상처부위가 보이지 않게 셔츠를 추켜올렸다. 다시 말하지만 너무 아파 보여서는 안됐다. 생각보다 팔에 힘이 있어서 이마와 뺨도 쓱쓱 문질렀다. 멀끔해지고 나니 질척거리는 옷이 아쉬웠다. 이것만 어떻게 하면 펭귄처럼 말쑥하겠다. 이런저런 아쉬운 생각들로 몇 분을 버티니 누가 단델리온의 이름을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든 알아들을 수 있다. 고개가 겨우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벌써 지척에 와 있었다. 곧 시야에 잘생긴 이목구비가 들어온다. 하얗고 갸륵한 얼굴이 줄창 흐르는 눈물로 가득하다. 그는 쓰러지듯 주저앉아서 엉망진창인 단델리온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의 가슴 위에 뺨을 기대었다. 아무래도 몸에 숭숭 뚫린 바람구멍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래, 오키드가 눈치채지 않길 바라는 건 무리가 있었다. 조금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아서 살짝 슬퍼졌다. 아니, 말에 어폐가 있군. 지금 오키드의 모습은 정말이지 일생일대의 충격이다. 일부러 사람을 비틀어 즙을 짜낸대도 이렇게 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단델리온도 펑펑 울었다.
“리온, 단델리온.”
단델리온이 얄팍한 사심을 담아 머리에 피가 몰린다고 칭얼거렸다. 그러자 자기 옷을 훌훌 벗어 베개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맙고 애틋하지만 단델리온의 욕심은 끝을 몰랐다. 몸뚱이가 자길 제발 놓고 저 세상으로 떠나달라고 소리 높이는 와중에도 간간히 수작을 부려 오키드의 어깨에 머리를 누이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는 바라도 되잖아. 안 그래? 손을 뻗어 오키드의 얼굴을 만진다. 사암을 송곳으로 갈아낸들 이토록 촘촘하게 생겨먹을 수 있을까. 오키드는 단델리온이 그럴수록 그의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너무 약했다. 그를 지탱하는 팔다리의 근육이 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긴장이 아니다. 추워서는 더더욱 아니다. 순전히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나 할 말이 있는데.”
“해, 해! 들을게.”
단델리온이 입을 달싹이다 말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오키드의 손을 잡고 천천히 구부러진 손가락을 폈다. 그는 차마 단델리온의 몸에서 다른 잡을 곳을 찾지 못해 두 손이 옴짝달싹 못하고 한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사이가 벌어져 하나, 둘씩 생기는 틈으로 단델리온의 손가락이 들어간다. 갖은 고생으로 뼈가 완연하다. 손바닥을 더 긴밀하게 느끼고 싶었다.
“내 장갑 빼 줄래?”
곧 맨살과 맨살이 닿았다. 단델리온은 죽지만 오키드는 살아서 행복해야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동안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더 웃고 살았으면 좋겠다. 거리를 걷거나 다른 사람들과 키득키득 헛짓거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단델리온이 오키드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말도 못한다. 그는 여태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반시체가 되고 나니 진작 오키드와 절연이라도 할 걸 그랬나 후회했다. 오키드와 단델리온이 이별하고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옛날옛적 서로에게 미운 말을 하거나 개싸움처럼 치고 박고 엿이라도 날리며 헤어졌어야지. 그럼 나중에 단델리온에 대해 생각할 때 ‘그래도 친했을 땐 괜찮았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였다’ 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게 아닌가. ‘그때 죽어서 마음이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기적인 새끼였어’ 라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가지 않겠는가. 이렇게 단델리온이 사라져 버리면 오키드가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텐데 그런 감정 따위 자신 따위가 받다니 사치다. 과분하다. 지금도 이렇게 우는데 시체를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을 어떻게 이 소년에게 시키지. 나중에 아침에 좋은 차를 마시고 번듯한 산책길을 걷다 말고 단델리온을 생각하며 슬퍼하면 어떡해. 그런 생각에 단델리온이 더 울었다. 살이 저미도록 슬프다. 오키드는 단델리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며 울었다.
내가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널 막상 앞에 두고 나면 바보 같은 생각만 해. 오키드, 헤임달, 헤임달 제더카이어, 기왕 슬플 거라면 내가 욕심 하나만 더 부려도 될까. 어차피 돌려받지 못할 마음이라면 줘도 괜찮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을 함으로써 오키드는 또 다른 짐을 안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둘 다 자신이 먼저 시작했다고 여겼다.
“오키드.”
“응.”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아니, 오키드가 바라는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해.”
“어?”
단델리온은 혹시 오키드가 우정으로 착각할까 봐 힘있게 덧붙였다. 남들이 듣기에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들렸지만 제 딴에는 불굴의 용기를 끌어 올려야 했다.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키드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 오키드의 슬픔이 며칠이나 더 늘어났을까. 네 시간은 웃기에도 모자란데. 하루를 쪼개 원없이 자고 먹고 즐거워하는 데 써야 한단 말이야. 미안해. 그렇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냐. 오키드. 나 너를.
“사랑해, 키스해도 좋을 만큼…”
오키드가 대답하려고 했다. 단델리온이 눈을 감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테다. 그가 깜짝 놀라 단델리온을 불렀다. 그를 제대로 앉히려 허리도 세게 받쳤다. 그러자 바라던 대답은커녕 식어가는 모가지가 뒤로 늘어지려다 가슴팍에 떨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크게 뛰던 심장 소리가 점차 공포로 더욱 크게 뛰었다. 단델리온의 몸을 억지로 흔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 이빨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오키드는 그로부터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고, 다 흐른 피가 말라붙을 즈음 그가 단델리온을 세게 끌어안았다. 주위가 비참할만큼 조용하다. 부러진 지팡이만 바람에 굴렀다. 오키드가 애가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이 한몸 기댈 자리 없이 미치도록 싸늘한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단델리온만이 ‘진짜’ 였는데. 헛되고 삿된 이곳에서 가장 간절하고 보잘것없고 완전한……
나는 이제 어떡해?
세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너무 이상하다. 오키드가 중얼거렸다. 세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너무 이상하다고. 이상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