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다리우스&레일라
“무엇이 못마땅해서 그래요. 맨날 툴툴 대구.”
다리우스의 얼굴에서 아릿한 노기와 더없는 흔연함 사이에는 차이라고는 고작 그의 세 치 혀밖에 없었다. 레일라의 얼굴에서도 아릿한 서운함과 더없는 낭만 사이의 차이라곤 고작 세 치 혀밖에 없다. 한 쪽은 자못 진지하게 단속한 얼굴이 싱겁다. 나머지 한 쪽은 아직 눈매가 동그랗고 애매하게 다문 입이 인상으로 굳어버린 미소를 그렸다.
“대답인가요?”
책망이 아니었다. 책망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잘못이다. 그는 그 자리에 아주 쪼그려 앉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뜯어본 레일라는 몸태가 가늘고 얼굴엔 솜털이 소복하게 올라와서 더욱 앳되어 보였다. 몸뚱이야 날렵하지만 수완이 없다. 레일라는 검을 들었지만 사람을 찌르거나 벨 수 있는 날붙이로 무장을 시키는 것으로는 그를 강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일라는 배운 것이라면 모조리 한번쯤 시험하려는 학생의 덕성을 갖추고 있었다. 학생의 덕성. 학생의 태도. 무엇이든 뭘 잘 몰라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럴 때에는 바닥에 굴려서 이 세상 미친 새끼는 다 만나보고 실망하고 방구석에서 우는 게 제일인데 귀족들은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렇게 키운 게 잘못이 아닌가?
다리우스도 언젠가는 열아홉 살이었다. 지금과 아주 다르진 않다. 충동에 이끌리고 뒷일은 하루라도 나이를 더 먹은 다리우스에게 맡겼다. 그와 레일라가 걸어온 길은 너무나도 달라서 기가 찰 정도였지만 원래 사람이 남에게 마음을 쓸수록 그자와 스스로를 겹쳐 보게 된다. 다리우스가 길을 걷다 보면 정도는 너무나도 거칠고 걷기 어려워서 눈물이 났다. 일생이 오로지 피할 방도만 연구하는 모면의 연속이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눈에 뜨이는 건 닥치는 대로 했다. 하고픈 것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려서 하기 싫은 건 싹다 때려쳤다. 레일라는 좁고 파란 산천 오솔길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수천 가지 소망 중 하고픈 것을 고르느라 바쁠 나이에 누가 하지 말라고 잡아챈 일이 너무 많았나 보다. 모르긴 몰라도 열아홉의 다리우스와 레일라가 만난다면 잘도 웃길텐데 표정 관리에 도통한 다리우스 네예스타니도 그런 생각에는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다. 머리를 박박 깎고 흙먼지로 드러운 수건을 목에 두른 다리우스, 아무리 싸납쟁이로소니 마구잡이로 말하고 종일 싫은 사람에게 작간이나 칠 궁리를 하는 다리우스 세페리는 레일라의 눈 앞에 띌 일이 없으리라. 서로의 공간을 내왕하지 못하리라. 그러한 생각도 할 수 없으리라.
잘 어울리는 파란 끈과 머리카락이 같이 흔들렸다. 만일 레일라가 미간을 좁히고 불호령을 내렸다면 이렇게 대꾸하지는 않았을텐데 레일라는 웃었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안 돼. 그럼 더 호되게 다칠 날이 올테니까. 그래서 안 돼.
“당신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 같습니다. 꼭 엄마가 이웃에게 인사하래서 꼬박꼬박 인사하는 아홉 살짜리처럼. 내 그것을 보아 묻습니다. 레일라 님,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합니까? 누구를 따라하고 계십니까? 왜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만 믿으십니까? 왜 곧바로 돌려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구십니까?”
그건 나쁜 겁니다. 언젠가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게 만들 정도로 지극히 나쁜 겁니다. 바가지를 쓰고도 그런가보다 넘어가고 기분이 상했는데 생글생글 웃음이 나와선 안됩니다.
다리우스는 한번쯤 레일리의 인생사에 나타나는 미친 새끼가 한번 되어 보기로 했다. 자기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개지랄을 하고, 못살게 굴고, 싫은 것을 들추고 물어보는 그런 뭐 미친 새끼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