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기디온,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싫어. 오로지 죽을 사람만이 약속이란 것을 해. 핸드폰을 두 손으로 붙잡는다. 기디온이 제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잠근 사무실이 끈적한 액으로 미끌거렸다. 신발 바닥이 자박거려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발을 떼려면 몹시 느리게 움직여야 했다. 날아간 고양이 문으로 머리가 보인다. 공포로 휘둥그레진 눈망울은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질 때까지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시뻘겋게 잇자국을 따라 찢어진 몸뚱이를 뒤늦게 내려다보았고, 곧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스스로 막았다. 그리고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안심하라는 듯이. 괜찮다는 것처럼. 기디온이 일어나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이 벌벌 떨렸다. 그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신시아는 바람에 뭉텅뭉텅 쓸려나가려는 말을 짓씹듯이 뱉었다. 그는 소리로 미루어 막 헬기가 떠오르려는 참임을 알 수 있었다.
랭커 박사님, 휴대기기를 버리십시오!
“꼭 살아 있어야 해. 알았지? 나는 군대와 정부가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날 기다려야 해. 기다려서…”
랭커 박사님!
숫제 울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다. 이럴 때의 신시아는 가파른 콧대가 빨갛고 입술은 하얄 텐데.
“기다려서……”
두 사람의 말이 교차한다.
“사랑해.”
신시아는 약속했고,
“같이 스페인의 에브로 강변을 걷자…”
기디온은 걱정했다.
“다치면 안 돼.”
하늘이 신시아에게 내린 재주 중 하나가 딴말을 해도 알아서 하려던 말로 알아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시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곧 범인이라면 감히 깰 수 없는 눈물의 현장을 군인이 깨뜨린다. 말만 공손하게 박사님, 박사님 하지 폭력적인 게 박사자식아, 박사새끼야 수준이었다. 기디온은 신시아가 핸드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실랑이에 연신 신시아를 부르다 소리가 끊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문을 연다. 건축가의 캐비넷은 요술상자처럼 아무 것이나 토해냈다.
그는 몇 장의 사진과 취미처럼 씹어 먹어서 유통기한이 지난 지가 벌써 오래인 영양제, 분명 쓰려고 넣어 두었던 종이 틈에서 썩어가는 공구 박스를 찾는다. 몇 개의 드라이버와 스패너, 말할 것도 없이 필요 없는 볼트와 너트, 버니어 캘리퍼스, 그것들을 모두 제치고 살짝 녹슨 흠까지 갈아낸 것처럼 날카로운 날이 으뜸인 빠루망치에 손을 얹는다. 들어 보니 아주 무겁지도 균형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문 앞으로 다가선 것만으로도 낭떠러지 앞으로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비탈길 밑에 영원히 집을 짓고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초대할 수만 있다면. 중력이 절벽의 능선을 따라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목숨을 끊어놓을 때 그저 슬픈 마음으로 기릴 수만 있다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아무리 그러고 싶대도 언젠가 돌길이 무너져 지붕을 때리고 기디온은 죽어 피가 소리를 내며 튀겠지. 굳이 묘사하자면 찹, 아니면 착. 이도 저도 아니면 퍽. 머리카락을 대충 묶는다. 허물어지는 몸뚱이가 모두 괴물이 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문고리를 돌리자 노랗고 붉은 체액이 물씬 존재감을 풍겼다. 자, 이제. 도망쳐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