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제가 2021. 7. 22. 11:08

기디온 인트로 로그

 


 

 

"우리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신시아가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수 없어. 우리는 다신 만날 수 없어. 돌아올 수 없어. 돌아갈 수 없어. 나는 너를 너무 증오해서 죽이고 밀치고 때리고 싶어. 그러고 싶어. 다시 만나고 싶어. 돌아오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나는 너를 너무...

 

 

 

기디온은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물리와 정신을 막론하고 그랬다. 그에게 들어찬 공동은 넓고도 깊어서 언제나 미련과 회한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아서 누구라도 단 한번이라도 눈을 마주쳐 웃어준다면 아무래도 기쁘지 않겠는가. 신시아는 언제나 기디온이 돌아보기를 멈출 때까지 멀어지는 기디온을 힐끔거리곤 했다. 기디온은 요즈음 자주 신시아를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떠나가는> 이 여로에 서서도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녀가 원한다면 말이다. 

이번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엔,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같이 떠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창밖으로 눈보라가 있다. 얼어붙은 시체와 또 눈발, 서리, 길게 찢어지는 바람 소리가 있다. 오늘 밤도 미치도록 추울 것이다. 추위는 집요하게 산 사람을 따라붙는다. 산과 들을 누비며 추위로부터 도망치는 게 마냥 재밌기만 했던 때가 있었는데 딱 거기서 멈췄더라면 욕먹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겨울이 온다’ 고 등장인물이 염불을 그렇게 외던 드라마를 생각한다. ‘겨울이 온다’ 고 그렇게 대대로 강조했던 건 아마 그 다음에 봄이 오긴 온다는 건 알아서가 아니었나. 만일 약속된 봄이 없었더라면 겨울을 대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새로이 움트는 새싹과 태어나는 생명을 예비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영원한 겨울 안에서는 다 죽고 말 테니까. 결국 그 드라마는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종영했다. 화산이 일 년만 늦게 터졌어도 완결까지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지각 운동이 눈치를 덜 봤다. 그게 미룰 대로 미룬 거였다면 지구에게 사과해야겠다. 

 

정말로 봄이 찾아온다면 꼭 그 드라마 영상을 찾아서 공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겨울이 오고 있다’ 는 대사를 한껏 비웃으며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어린애들은 영상이 뭔지도 잘 모를 테니 잘 모른 채로 내용도 모르는 드라마를 목 빼놓고 보고 어른들은 갈 때까지 간 전개를 삿대질한다. 그러고 난 뒤에는 휴식으로 기운이 충만할테니 지구를 재건한다. 먹을 게 없으면? 양치식물이라도 뜯어 먹지 뭐. 기디온은 고사리나 이끼 정도는 어디에나 살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들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자란다. 봄이 왔는데 그깟 게 대수랴? 

 

바퀴가 눈을 밟는 소리는 사박사박보다는 더 힘겹고 지치다.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다. 뒤를 또 돌아보았다. 아까 전과 다를 바 없다. 아마 한번만 더 돌아보면 무슨 일 있냐고 누가 물을 게 뻔했다. 기디온은 참을성 있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느리고 오래된 선율에 귀를 맡기며 충동을 억눌렀다. 오늘 밤은 길다. 그리고 앞으로도 억눌러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